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김순기의 글과 그림 본문

울림의 글/시집 읽기

김순기의 글과 그림

비평쟁이 괴리 2016. 10. 17. 06:15

김순기Soun-Gui KIM의 글과 그림은 글-그림이면서 글/그림이다. 애초에 동양의 전통적인 서화(書畫)에서 출발한 듯이 보인다. 그러나 화가-시인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글과 그림을 분리시켜서 유사성을 이타성으로 이동시킨다. 그 이동은 유사성 내부에 이타성을 발생시키는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유사성의 세계를 통째로 이타성의 세계로 바꾸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그의 글-/그림은 옛것의 이국취향을 이용하여 새로움을 현시하는 작업과도 다르며, 푸코가 마그리트와 워홀 등에서 찾아낸 유사(類似)의 상사(相似)로의 전환과도 다르다. 푸코가 해석한 마그리트가 근대 예술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재현의 해체와 반복 유희를 통한 새로움의 발생을 특징으로 갖는다면, 김순기의 서화는 재현 내부에서 재현되지 않은 것, 재현될 수 없었던 것을 솟아나게 한다. 상사의 유희는 탈주의 향락인 데 비해, 김순기의 작업은 즐거움과 고통의 복합체로서의 분만을 체험케 한다. 잉태 없는 신생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김순기의 서화는 아주 오랜 숙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동양의 고전적 미학 원리 중의 하나인 정중동을 절묘하게 전용하여 예기치 않은 것의 발견, 억제되었던 것의 상큼한 출몰이라는 사건을 일으킨다. 나는 김순기 글-그림의 미학적 원리를 서행(徐行)의 도약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눈송이의 발걸음으로 달리는 멧돼지의 이미지가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 천천히 가는 비약이다.(2016.08.18.)

 

김순기 화백은 장-뤽 낭시의 나를 만지지 마라를 번역한 연유로 인연을 맺게 된 분이다. 낭시 선생이 한국어 번역본 한 권을 그의 오랜 친구인 김순기 화백에게 선물했고, 김화백이 그것을 읽고 한국에 오셨을 때 내게 연락을 하셔서 인사를 나눴다. 그이의 말에 따르면 그이는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하자마자 프랑스로 유학하여 거기에서 정착해 대학교수(니스, 마르세이유, 디종)로 재직하였고 화가로서 활동하였다. 그이의 화풍은 실험적 성격이 강했으며 전위적 음악가 존 케이지와 작업하였고, 데리다, 낭시, 라바테Jean-Michel Rabaté 등의 철학자들과 교류하고 작업하였다고 한다. 김화백은 최근 시와 그림을 한데 어울리게 한 시화집, 보이니? Entends-tu?(오뉴월, 2016)를 상자하였다. 위의 글은 그 시집 뒷표지에 실은 일종의 추천사이다.

그 시집에 들어 있는 그림 일부를 김화백의 양해를 얻어 여기에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