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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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시집 읽기

오은의 새 시집

비평쟁이 괴리 2016. 10. 6. 09:01


오은의 새 시집, 유에서 유(문학과지성사, 2016)는 그가 말장난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걸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의 손은 말의 분수이고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형형색색일 뿐 아니라 춤까지 춘다. 그런 버라이어티 쇼를 보면서 나는 오은이 입이 간지러워 미칠 지경인 줄로 알았다. 그러나 차츰 그의 입은 시방 침이 바짝 말라 있다고 짐작하게 되었다. 입이 간지러운 사람은 언어의 풍요를 갈망하지만, 입이 마른 사람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해서 입의 수액을 계속 소모시키고 있다. 그것은 시인이 오늘의 상황은 언어의 과잉으로 인하여 진실의 드러냄으로서의 언어의 기능이 망실된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수다는 이 과잉된 언어를 눙치고 비틀고 찌르고 깨물고 늘리고 접고 하는 해체적 작업의 하나이다. 그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도 말할 수 없는 이야기가 그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좋지 않은 말들이 너무나 기세등등하게 진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천편일률적으로.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는 교묘한 말장난을 통해서 간신히 그 사정을 표징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장난은 언어의 사투이다. 나는 다중적으로 읽히는 다음 시구가 시인의 절박한 처지를 명료하게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옛날이야기가 있어. 여기 아직 있어. 여기 아직 그대로 있어.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이야기. 입을 벌려도 차마 나오지 않는 이야기. 귀를 기울여도 답이 없는 이야기. 마찬가지 이야기. (옛날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