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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의 글/문학일반

발레리 시구에 대한 새로운 번역

비평쟁이 괴리 2016. 9. 22. 01:16



성귀수가 발레리의 "Le vent se lève!"를 "바람이 일어난다!"로 번역한 것(폴 발레리,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 성귀수 옮김, 아티초크 빈티지, 2016)은 의표를 찌르는 참신한 생각의 소산이다.


발레리의 이 시에 도전한 지금까지의 번역들은 모두 다음 문장 "Il faut tenter de vivre!"에 고심해 왔다. "Le vent se lève!"를 거의 자동적으로 "바람이 분다!"로 읽은 반면, 후자의 문장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는 한국어 문장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tenter de"가 문제였다. "Il faut vivre!"라고 했다면, 간단히 "살아야한다!"로 번역하면 된다. 그러나 영어로 "try to"와 비슷한 뜻의 "tenter de"가 앞에 끼어들어감으로써 "살아야한다!" 이상의 다른 표현이 첨가되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래서 "살아야겠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 "살아보자꾸나!" 등의 다양한 번역이 제출되었다.
성귀수는 기존의 번역자들이 뒷 문장에 몰두함으로써 앞 문장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대해 왔다는 것에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단어 그대로 직역하는 게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즉 se lever의 가장 기본적인 뜻인 "아래쪽에서 윗쪽으로 움직이다"를 지각하도록 하는 쪽으로 번역을 수정하였다. 그럼으로써 이 구절에 대한 '지각적 자동성'을 깨뜨리고 바람의 운동을 의식적으로 이해하게 하고 감각적으로 느끼게 한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번역자들이 "Le vent se lève!"를 자동적으로 "바람이 분다"로 번역한 것은 그 표현 자체가 프랑스어의 관용어구였기 때문이다. 『로베르 사전』은 'se lever'의 세 번째 뜻으로서 "불기 시작하다"를 제시하고 "Le vent se lève!"를 용례로 들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구문의 사용 시점이 15세기부터라고 적고 있다. 이어서 발레리 이전에 이 문구를 사용한 작가의 시구를 소개한다. 

Le vent se leva; les palmiers faisaient le bruit de la mer (…) -E. Fromentin, Un été dans le Sahara, p. 121.
바람이 불었다; 종려나무들이 바다 소리를 내고 있었다. - 위젠 프로망텡,  「사하라에서의 어느 여름」(1854), in 『파리 지 Revue de Paris 』 (http://www.lerobert.com/)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성귀수의 도발적인 번역은 그의 시인적 재능이 절묘하게 발휘된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발한 번역이 독자에게 유발하는 것은 무엇보다 언어의 감각적 즐김, 즉 시적 효과인 것이다. 
나는 그가 낸 유일한(?) 시집, 『정신의 무거운 실험과 무한히 가벼운 실험정신』(문학세계사, 2003)을 주목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변에 얘기했지만 내 말에 진지하게 호응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나 자신 이런 저런 핑계로 그 시집을 꼼꼼히 읽어 볼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지 못한 채로 있었다. 아쉽지만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또한 그에게도 시인으로서의 인생이 남아 있다고 나는 여전히 생각한다. (201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