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정과리)의 문신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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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찢기 십 수 년의 감회

비평쟁이 괴리 2016. 1. 7. 05:52

문학평론하는 괴리씨는 살아 오면서 틈틈이 모은 책이 3만권 쯤 된다. 돈이 생길 때마다 쪼개서 산 것들이 대부분이다. 애착이 안 갈 수가 없다. 유복하게 태어나질 못해서 비좁은 집을 겨우 장만했으니, 책을 그 안에 우겨 넣기가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이사하면 대뜸 안방부터 서재로 접수하고 거실, 복도, 아이들 방에까지 책을 쌓아 놓고 살아야만 했다. 나이가 들면서 호봉도 올라가서 조금씩 집을 넓혀갈 수 있었지만, 책의 속도가 언제나 일방적으로 빨랐다. 그러다 보니, 늘 책을 이고 사는 꼴이었다. “어디 책 한 권 주면 안 잡아 먹지!’하는 호랑이가 안나타나나?” 아침마다 비난수하는 게 이 말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분홍빛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괴리씨는 책에 관한 한 수집할 줄만 알았지 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핑계는 늘 그럴싸하게 있었다. 문학평론이 직업인만큼 언제 써먹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책에 압사하는 꿈을 꾼 가족들이 격렬히 항의를 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는 데도 불구하고 괴리씨를 꿋꿋이 버티게 해 준 명분이었다.

그러나 괴리씨의 유전자에는 도둑은 없고 도덕적인 성분이 꽤 함유되어 있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붓고 있었다. 그도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만간 갱년기를 통과한 마누라는 겉잡을 수 없도록 힘이 세질 것이었다. 그러던 중 생각해낸 게 책을 찢어서 스캔을 하여 파일로 만들고 종이책은 버리는 안이었다. 꽤 그럴싸 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이리저리 뒤져 쓸만한 스캐너를 찾아서 작업을 시작한 게 벌서 십 수 년 전이었다. 해보니 썩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파일화된 책들은 아주 작고 가벼웠다. 예전같으면 어떤 글을 쓰기 위해 보따리로 들고 다녀야 했던 책들을, 그것도 항상 부족하기만 했던 책들을, 이제는 외장 하드 디스켓에 담아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아무 데서나 열어 볼 수가 있었다. “이렇게 좋은 걸!” 그래서 손에 잡히는 족족 해체해서 파일을 만들었다. 방식은 간단했다. 책의 겉장을 뜯는다. 겉장 크기대로 평판 스캔한다. 속페이지들은 접착되어 있는 부분 옆을 재단기로 일괄적으로 자른다. 자동 공급장치를 통해서 스캔한다. 스캔된 내용을 파일로 변환한다. 겉장 파일과 본문 파일을 합쳐 파일을 완성한다. 책은 버린다. 그런 방식으로 그 동안 거의 1만 권으로부터 중력을 빼앗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책을 찢을 때마다 자식을 저승으로 보내는 애비의 심정이 되었다. 어떻게 모은 책인데! 스캔을 깨끗하게 하려면, 책 안에 잉크로 해 놓은 주석은 어쩔 수 없었지만 연필로 한 건 지우개로 가능한 한 지워야 했다. 그가 책 안에 남긴 흔적은 모두 책에 쏟아 부은 사랑의 징표들이었다. 그런 것들과 단호히 결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책을 쌓아두는 건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종이책은 시간이 지나면 바래고 푸석푸석해져서 마침내는 먼지로 화할 것이다. 뜯어 보니 한국책이 서양책보다 그 바래는 정도가 더 심했다. 20여 년 전에 나온 것들 중엔 벌써 누렇게 변색된 게 태반이었다. 차라리 죽여주는 게 더 나았다. 빨리 죽일수록 깨끗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니 과감히 부욱 찢어주었다. 이렇게 내가 그의 육체적 생명을 빼앗긴 했지만 그 덕에 그는 영생을 부여받은 게 아닌가? 책은 본래 안에 생명들이 넘쳐나는 장소이니 파일 안에 진정한 삶들이 퇴화됨 없이 싱싱싱할 것 같았다. 괴리씨는 신명이 났다. 새로 책을 사거나 얻게 되면 우선 찢고 보았다. 그걸 할 때마다 사이버(cyber) 조물주가 되는 기분이었다. “디지털 문명과 전자 기술의 이름으로 네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다!.” 문득 괴리씨에게는 자신의 목숨에도 그렇게 영생을 부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일었다. 곰곰이 생각하니 그건 재미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 육체성, 이게 얼마나 짜릿한 건데, 어떻게 버리나?

괴리씨가 사이비(似而非) 조물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창조문예』, 2015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