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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씨의 모바일 체험기

비평쟁이 괴리 2015. 12. 8. 13:14

이 글은 박이도 시인이 편집하시는 창조문예201511월에 발표된 글이다. 출간된 지 1달이 지났으므로 잡지사의 양해를 얻어 블로그에 올린다.

 

M씨의 모바일 체험기

 

 

 

M은 한 때 아동문학 편집자였다. 출판사 집안에서 자라서 책에 대한 안목이 나쁘지 않았다. 때문에 양질의 도서를 많이 냈고 상도 여러 개 탔다. 그는 하지만 대학교수인 아내가 연구년 차 영국으로 공부하러 갈 때 동행하면서 출판사를 그만 두었다. 그는 그 즈음 작가들과 교제하는 일에 지쳐 있었다. 작가들이란 아무리 정성을 쏟아 부어도 한없이 흘리기만 하는 밑빠진 독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종류도 수없고 되풀이도 한이 없었다. “인세를 올려달라.” “자료를 찾아달라.” “디자인을 바꿔 달라.” “모모 작가와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건 참을 수 없어.”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꿈의 화수분이라는 자기도취에 빠져서 사는 이상한 부류였다.

귀국 후 M은 모바일에 푹 빠져들었다. 손 안에 폭 안기는 듯한 이 앙큼한 물건 안에 이토록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감추어져 있는 줄 몰랐다. ‘이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서 게임들이 우선 구미에 당겼다. 화려한 전투 게임들은 그가 하기엔 벅찼다. 하지만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 보급되던 시절 유행한 테트리스처럼 쌓아서 없애는 게임들은 그를 매번 감질나게 했다. ‘문질문질하면 그림들이 폭삭 가라앉고 점수가 올라갔다. 게임이 지겨워지면 그는 꽃집 찾기로 건너갔다. 때마침 석곡 가꾸기에 맛을 들인 참이었다. 모바일에 들어가면 자신과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때로는 서로 기른 식물들도 나눠 가졌다. 꽃집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맛집도 있고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곳도 있었다.

M은 아직 자신이 젊은 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진 찍기에 손가락이 더 자주 갔다. 해상도가 좋아서 적당히 초점을 맞추고 찍어도 그림이 잘 나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신나는 건 셀카였다. 나를 찍다니! 게다가 보정까지 되어서 자기 모습을 근사하게 모양낼 수 있었다. 사진의 역사에서 진정 획기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사진은 추억을 압축해 보존하는 기계가 아니라 자기를 보듬는 장치였다. 그래서 뭐하나? 바로 제 므흣한 얼굴을 친구들에게 보내거나 아니면 지인들이 볼 수 있도록 링크를 거는 것이다. ‘이게 나야!’하고 외치는 것이다. 보관이 아니라 전시였다. 사진은 이제 역사의 영역에서 미래로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M은 책 읽는 엡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설치를 했더니 자잘한 글씨들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작았지만 읽는 데 불편하진 않았다. 조그만 사각틀 안에서 오로지 글자에만 집중하는 재미도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책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M은 어느새 아랫목이 뜨끈뜨끈한 시골집 사랑방에서 배를 지지며 책장을 넘기는 아늑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한 순간 이 귀향에 낯선 마음의 가로대가 턱 얹혔다. “이게 뭥미?” M은 자문했다. 게임의 쾌락이나 사진의 자기만족이 아쉬워진 것이었다. 게임은 나를 잊게 하고 사진은 나를 즐기게 했다. 그런데 책은 여전히 세상과 타인을 생각게 하는 것이다. 같은 기계 안의 문화지만 향유의 방식도 결과도 달랐다.

세상의 발견은 인류가 제 무기로 특별히 개발해 온 호기심이라는 능력의 원천이자 귀결이었다. 거긴 온갖 희로애락의 묘상이었다. 한데 갈수록 희락이 희박해지고 애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M은 느꼈다. 대신 즐거움과 쾌락은 사진과 게임이 독점하는 듯싶었다. 그렇다면 번갈아 누리면 되겠네. 그래서 M셀카북스를 적당히 순회하기 시작하였다. 한데 정말 희한한 일은, 희로애락이 함께 있으면 감정의 곱셈이 일어났는데, 그렇게 분리되자 뺄셈이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M의 마음은 갈수록 초췌해졌다.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점점 좀비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너는 살만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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