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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의 뜻: 에드몽 자베스의 『엘리야』에서 본문

울림의 글/시집 읽기

원죄의 뜻: 에드몽 자베스의 『엘리야』에서

비평쟁이 괴리 2014. 4. 14. 10:15

 

의무로 주어진 글쓰기가 하기 싫어 공연히 시집들을 뒤적거린다. 이곳의 헌책 좌판에서 산 에드몽 자베스Edmond Jabès엘리야Elya를 조금씩 읽는다. 읽다가 다음 구절에 머물러 이 말의 천재적인 곡예사가 보여주는 휘황한 순간에 한참 사로잡힌다.

 

원죄는 기억의 죄이다. 우리는 결코 시간의 끝에 가 닿지 못할 것이다.

Le péché initial est péché de mémoire. Nous n’irons jamais au bout du temps.

 

‘le péché initial’원죄에 대한 일반적인 프랑스어 표현인 ‘le péché original’의 의도적인 변형으로 보인다. 아마도 논란을 피하고 싶다는 심리도 끼어들었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후자의 형용사가 확정적인 데 비해 전자의 형용사는 동태적이라는 이유도 작용했을 것 같다. 그 점을 전제한다면, 첫 문장은 원죄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를 완벽하게 뒤집어 놓고 있다.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원죄는 하느님을 모르는 죄”, 하느님의 존재를 망각한 죄인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그것이 망각의 죄가 아니라 기억의 죄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억의 죄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이자, 그것의 결과가 두 번째 문장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히 유예됨으로써 끝없는 경과로서만 존재하는 결과이다. 두 번째 문장에 의하면, “기억의 죄에서, 기억은 이제는 없는 것을 상기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거푸 다가가려 하지만 결코 다가가지 못하며, 결코 가 닿지 못하는 그것에 거푸 다가가려 하는 행동 때문에 과거를 향하는 몸짓이 언제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평생의 천형 같은 것이며, 그 천형의 근원이 되는 죄가 바로 기억의 죄’, 원죄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죄 덕분에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지적 생명의 진화가 어느 지점에서 일반적인 진화와 달라지며, 또한 어느 면에서 달라져야 하는지를 이보다 명확하게 지시하는 말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지시의미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과감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로 축복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대뜸 축복으로 착각하고 환호하면 진짜 천벌이 쏟아질 것이다.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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